역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는건가.

나의 백 오십 네번째 기록은 무려 1년하고도 4개월만의 것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나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지던 5년 전의 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지난 일년간의 일들은 어디갔는지 내 기억 속에 별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일상이 단조로워진 탓 만은 아니리라.

싸이월드의 광풍을 타고 불어닥친 마이홈피시대도 이제 어느정도 그 기세가 꺾인 듯 하다.

어느새 폐가처럼 방치되어있는 친구들의 미니(내 생각에는 '간이') 홈페이지들을 보면 기분이 좀 그렇다.
싸이월드를 성공으로 이끈 일촌 시스템-나를 보게 하기 위해 내가 남을 보아야하는-에 다들 조금은 지친게 아닌가 싶다.

자승자박이라고 하나.

뭐 암튼.

처음 내가 이곳을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왜 web이라는 지극히 열린 공간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는가에 대해서 물었다.
지금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남들이 나를 보아주길 바랬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데 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된 것 처럼 나도 이곳에 기록을 남기는 일에 흥미를 잃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의도야 어찌되었건.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끄젹여진 나의 기록들을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제법 즐거운 일이다.

내가 이곳을 폐허처럼 버려두지 못하게 만드는 나의 흔적들.

기록하지 않았다면 기억해내지 못했을 기분들.

역시나 이런 곳에 자신의 기록을 남겨둔다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다. 자기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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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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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1 13:11

여보 경은아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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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빠져버린 영화. 생각할 수 없다.

음악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정도로 영상과 잘 조화된
영화음악이 가끔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음악을 느낄 수 조차 없지만,
그 화면에서 음악이 빠져버린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난 음악을 참 좋아한다.

어떤 종류가 되었건.

어려서는,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중학교시절부터
군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한가지 종류의 음악만을 고집스레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적어도 음악에 관해서는 편식을 하지않는다.
그럴 필요나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하니까.

암튼 영화와 음악의 관계에 관해 잠시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난 영화가 아니라 나의 생활 속에서 그런 느낌을 가끔
받곤 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한강을 왼쪽에 끼고 강변북로를
따라 공항방향으로 달려갈 때랄지,
비오는 저녁 버스 차창 밖으로 흐리게 퍼지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센치해 질 때랄지,
한가한 일요일 아침 오랫만에 일찍 일어나 책을 펼쳐들고
다시 침대에 기대 앉아있을 때랄지,
기분 좋게 대청소를 할 때랄지,

이럴 때면,

아.. 이상황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와주면 좋을텐데...
또는 아... 이 상황에 이런 노래가 흘러나와주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마치 내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즐겨보기도 한다.

음악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건조할 것인가.


한동안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없었던 나에게,
다시금 풍성한 음악의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
새 컴퓨터에게 무한한 애정을 담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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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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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탓인지, 아니면 출퇴근 시간에 핸드폰 고스톱만 붙들고
있는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였는지,

오늘은 책을 좀 사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반년에 한 번 돌아올까 말까 하는 책 읽고 싶은 날이다.

'이 참에 습관좀 들여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쉽게 습관이 되지 않는다.

습관 들어봐야 책값이나 들고 머리속에 쓸데없는 공상만
늘어날테지.
이제 습관 들이는거 포기했다. 읽고싶을 때 찾아 읽으면
그만이다.

나이가 들수록 합리화의 기술은 늘어만 간다.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두 권의 책을 고르고나니 난 어째
그 흔한 인터넷 서점에 아이디도 하나 없다.

이 시점에서 뒤통수 한 번 긁적거려주고,

그래도 책은 서점에서 골라서 사야하는데...
또 한 번 합리화 기술 들어간다.


배송되는데 3일이나 걸린다니 조금 서운하다.
책 읽고 싶은 날은 바로 '오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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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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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매우 쓸모있는 물건이다.

가장 큰 매력은 그의 망각에 관한 절대적인 능력.

인간에겐 지우려 지우려 아무리 애써도 절대 지울 수 있는
기억이 있게 마련이거늘 이놈 컴퓨터는 정말이지 깨끗하게
자신의 지억을 지워버릴 수 있다. 휴지통을 비워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니!


컴퓨터는 시간을 되돌릴 줄도 안다.

'ctrl+z'... 과거로 돌아가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하고나서 '정말이지 ctrl+z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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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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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란 것은 통신수단이 되기에는 결점이 너무 많다
1876년 웨스턴 유니온의 내부문서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나는것은 불가능하다
1895년 영국 학술원장 켈빈경

발명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발명되었다
1899년 미국 특허청장 찰스 H 듀엘

주식은 오를만큼 올라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다
1929년 어빙피셔 예일대학 교수

미래의 컴퓨터 무게는 1.5톤 밖에 안될것이다
1949년 popular mechanics 誌

640kb이면 모든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
1981년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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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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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여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보도되었다.

캬~ 기가 막힌다.

핸드폰으로 순간을 포착하여(그것도 동영상으로!) 즉시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경악하고 놀라움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만 무엇이 놀라운가?
다들 학교 안다녀봤나?

요즘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0년
전(엨! 벌써 10년... ㅠ_ㅠ)만 해도 남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그런
식으로 폭행하는 일은 꽤나 자주 볼 수있는 장면이었다.
체벌 도구가 몽둥이던, 빗자루던, 대걸레건, 하키 스틱이건,아니면
주먹이건, 손바닥이건, 구둣발이건 그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교사들에 의한 학생들의 폭력은 거의 조폭의 세계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그런 것이었다.
내 학창시절의 한 부분에는 야구방망이로 학생의 머리를 힘껏 내리
찍어버린 선생도 있었다.
스승님들을 이름 대신 '미친개', '쌍도끼', '피바다'라고 부르는 불손한
학생들을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말 안듣고 반항하는 학생들, 게다가 영악하게도 교사들을 살살
약올리는 학생들을 매일, 하루에도 수백명을 상대하다보면 교사도
인간일진대 어찌 열받고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는,

나는 비록 교사도 아니고 교육 현장에 교사의 입장으로 단 한시간도
서보지 못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건데 그런 식의 폭력은 절대적으로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건 회초리로 엉덩이나 허벅지, 손바닥을 때리거나, 코를 살짝 비틀어
주거나 볼을 꼬집는, 훈장님의 엄하지만 사람이 담긴 매와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무시당했을 때 나오는 감정실린 폭행.
이러한 폭력이 자행되는 순간 이미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권위주의의 두 축은 바로 군대와 학교이다.

군대와 학교를(특히 남학교를)모두 다녀 온 사람들이라면 공감
하겠지만, 우리의 군대와 학교는 정말이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조회시 사열대에 열맞춰 늘어선 학생들의
모습이나, 높은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훈시하는 교장의 권위적인 모습,
게다가 '교장선생님께 대한 경례' 구령과 함께 깃발이 오르락 거리고
군대식 빵빠레가 울린다거나 하는 모습들.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국기계양식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군대에서 상급자가 가지는 권위는 불행히도 그 자신의 위엄이나 능력,
지식 또는 덕망에 대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시스템이 개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권위를 부여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권위가 쥐어졌을 때, 그들을
누가 막을 것인가.

교장은 교사의 장으로서 군림하고, 교감은 교사들을 감시하며, 교사는
학생들을 제압해야 하는 학교 시스템.

우리의 아이들과 선량한 교사들이 이와같은 시스템에 의해 희생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아픈 일이다.

존경과 권위는 학생들에 의해 교사에게 자연스럽게 부여되어야 한다.
또한 교사가 반드시 권위를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엄마 아빠 누나 언니 형 오빠같은 선생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우스운 선생님, 때로는 귀여운 선생님, 때로는 자상한 선생님,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을 권위로 다스리고,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
그리고 그러한 교사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학교 시스템은 붕괴되어야한다.

이러한 일들은 아마도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십수년 전의 모습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미 학교는 내 기억속의 학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도전 골든벨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의 잔치를
위해 우스꽝스럽지만 열심히 연습한 응원 댄스를 보여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난 더 큰 사랑을 느낀다.

비록 내 기억에는 그런 선생님들이 몇 분 남아있지 않지만, 만약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서 사랑을 느낀다면, 아이들도 아마 선생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교사들이 권위를 가지게 될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닐까.

아니지.

이쯤되면 더더욱 교사들이 권위를 가질 필요가 없게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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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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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찾아온 회사에서의 여유.

웹서핑도 할 수 있고, 밀린 은행 일도 보고, 이렇게 일기도 쓸 수 있고.

아~ 좋다.

이 여유도 오늘까지이긴 하지만...

그러나 내일은 기대하지 않았던 꿀맛같은 휴가!

돌아오는 주말은 황금같은 3일짜리 연휴!

그 다음주는 4.15 총선이 있으니...

앗싸 조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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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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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탄핵'문제와 관련하여 TV, 라디오, 우리 주변 어디
서고 토론이 한창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던 노무현씨의
계획이 어느정도는 실현되어 가고있는 셈이다.

2002년. 그러니까 대학교 졸업반 시절 강사 선생님과
토론에 관하여 토론했던 내용을 올려본다.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진 서면 토론이다.

[차돌 : 선생님께 질문!]=====================
선생님께서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대해 쓰신 글을 읽다보니 '토론은 승부가 나야 재미있다'는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수업 시간에 있을 토론에서 승부를 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왜 선생님께서는 토론이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하는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보는 이들의 재미를 위해서... 라는 것은 (심지어 상업방송에서의 TV프로그램일지라도)무리가 있을 듯 싶구요.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밑거름으로서의 토론의 목적은 첫째,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의 논지로써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에 있으며, 둘째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차를 좁혀나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상대방을 완벽히 설득하게 되는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처럼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하고
견해의 차이를 좁히게 되는데 토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전 후자의 경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치 무슨 싸움을 하듯이 '상대방을 무조건 내가 설득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논쟁'을 위해 토론에 임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라 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최근의 토론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말싸움이 토론이 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이란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란 그 구성원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을'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수업시간에는 '감히' 선생님의 교육방침에 반하는 의견을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이 수업은 이런 열린 공간이 있고 선생님께서 충분히 열려 있는 분이라 느껴 용기를 내봅니다. *^^* 예쁘게 봐주세요~)


[이남표 : 토론]==========================

경제학부 대단합니다!! ^^
작년에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해주었던
재규 학생도 경제학부였는데, 차돌 학생도 역시...^^;;

"Misc" 메뉴에 올린 글을 읽었나 보군요.
일단, 차돌 학생의 문제제기에 원칙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 글을 쓴 "맥락"이라는 게 있는 것이기에
그 점을 중심으로 '답변'이라기보다는 '토론'을 해 봅시다.


>선생님께서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 대해 쓰신 글을 읽다보니
>'토론은 승부가 나야 재미있다'는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텔레비전"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그렇다는 얘깁니다.
술자리에서 또는 그 밖의 자리에서 친구들과 벌이는
토론도 승부가 나야 재미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아래에서 말하죠...


>우리 수업 시간에 있을 토론에서 승부를 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관계는 있습니다.
우리 수업에서 토론의 승부를 내자는 것은
참여를 높이고자 하는 고육지책입니다.

80명이 듣는 수업에서, 예를 들어 7조와 8조가 토론을 벌이면,
나머지 7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자연히 흥미를 잃거나, 심한 경우에는 '딴 짓'을 하지요.-_-
따라서 경마적 또는 스포츠적 요소를 가미하겠다는 겁니다.

아울러, 미리 알려드리자면, 어떤 경우에는 토론을 벌인
두 조에게 똑같은 점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7조는 고민의 깊이가 뛰어나고 8조는 논리적인 언변이 뛰어나다면
굳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선생님께서는 토론이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보는 이들의
>재미를 위해서... 라는 것은 (심지어 상업방송에서의 TV프로
>그램일지라도)무리가 있을 듯 싶구요.

모든 토론이 반드시 승부가 나야한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오해를 했다면...
그건 뭐 글쓴 놈의 잘못이지요.^^

그러나 적어도 현재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텔레비전 토론이 보다 재미 있어야 한다고는 분명히 생각합니다.
한 밤중에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둘러 앉은 저녁시간대에도 텔레비전 토론을 볼 수
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의 TV토론을 황금시간대로 당기면
보나마나 시청률이 파악 떨어집니다. 그러면 상업방송 SBS는
말할 것도 없고, 광고에 의존하는 MBC나 KBS도 '공익성'보다는
'상업성'에 의해서 방송을 편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가족들이 둘러 앉아서 시간때우기에 불과한
삼류 오락 프로그램이나 질질 늘어지는 일일 연속극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쟁점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자는 겁니다.

저는 물론 방송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공익성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에서 공익성이 상업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방송사가 망하거든요...-_-;;

따라서 양 자 사이의 적절한 타협이 필요합니다.
'재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가 토론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척도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밑거름으로서의 토론의 목적은
>첫째,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의 논지로써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에 있으며, 둘째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차를 좁혀
>나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상대방을 완벽히 설득하게
>되는 경우보다는 후자의 경우처럼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이해
>하고 견해의 차이를 좁히게 되는데 토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전 후자의 경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치 무슨 싸움을 하듯이 '상대방을 무조건 내가 설득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논쟁'을 위해 토론에 임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라 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윗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최근의 토론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
>방의 의견을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말싸움
>이 토론이 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이란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란
>그 구성원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용납할
>준비가 되어있을'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텔레비전 토론에 출연한 패널들의 상당수가 자기 주장만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말꼬리 붙잡기로 일관합니다.

그런데도, 사회자는 공정성을 내세워서 패널들 사이의
동일한 시간 배분에 만족하거나 양 쪽의 의견이 모두 유익했다는
식으로 어설픈 결론을 내리는데 급급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자의 역량문제일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토론의 포맷 또는 구조의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새로운 포맷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지금 당장 저도 생각나는게 없습니다.
그러나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 가지 경향으로 누구의 논의가
정당하고 보다 논리적인 것인가를 밝혀보는 것은 어떨까
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 글쎄요, 제 생각은 대략 이 정도인데...
충분한 답변, 아니 논리적인 토론이 됐는지 모르겠군요.^^
미심쩍은 부분은 다시 질문해 주세요. 그리고 황사 조심!!


[차돌 : Re)토론]=========================
아! 그 '재규'학생은 아마도 제가 매우 귀엽게 여기는 제 후배인 '재규'학생인 듯 합니다. 선생님 수업에서만큼은 제가 후배가 되었군요. 훗


암튼 선생님의 글을 읽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의 실수를 아주 기분좋게 지적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


그리고 토론에 '승부'개념을 도입하자는 선생님 의견의 참신함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승부를 누가 내 주는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사회적으로 어느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에 대한 토론일 경우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토론의 주제는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요. (그래서 '쟁점토론'이라는 제목도 나오는 것 같고... ^^;)

예를들어 '발전 민영화 문제'에 관해 토론을 하는 경우 -이것은 개인의 세계관이랄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설사 토론에 참가한 어느 한 진영이 훨씬 더 논리적으로 우월하게 토론을 이끌었다고 해서 토론을 진행하는, 혹은 시청자들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준다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요.

토론이라는 것이 소수가 소외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마지노선 같은 것 아닙니까!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 보기에도 최근의 토론프로그램은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것 같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론프로그램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토론프로그램은 자칫 무관심 속으로 덮여버릴 수 있는 문제를 이슈화 시키거나 우리나라에 거의 부재하다 싶은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상업방송의 상업성과 연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선생님 말씀의 요지가 토론프로그램이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이야기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대해서 토론프로그램이 '재미'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논리적이지 못해 이야기가 복잡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토론프로그램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토론프로그램조차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토론문화의 확산이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둘 중 어느것이 바른 토론문화 확산에 유익한 것인지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나, 전 후자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토론문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에 끝나버리는 우리 수업시간에서야 어쩔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우리가 사는 동안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짧은 시간에 억지로(?) 완성시킬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이 커져 나간다면, 어쩌면 토론프로그램이 매우 재미나는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인가요. ㅡㅡㅋ

아무튼 그래서 토론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재미' 혹은 '시청률'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남표 : 재미있는 토론 ^^*]=================
차돌 학생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학생의 요지는 다음 인용문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저와의 의견 차이는 차돌 학생의 말처럼
"토론프로그램도 재미있어야 한다"(나)와
"토론프로그램조차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학생)로
볼 수 있겠군요.

>그러니까 저의 이야기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대해서 토론
>프로그램이 '재미'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토론프로그램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토론프로그램조차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과연 "재미"란 것이 무엇일까요?
뭐 어렵게 학술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저는 "얕은 재미"와 "깊은 재미"를 나눠보고 싶군요.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재미와 토론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재미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토론뿐만 아니라, 제대로 만든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도 우리는 깊이 있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토론 프로그램이 미리 재미 그 자체를 젖혀두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토론문화의 확산이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둘 중 어느것이 바른 토론문화 확산에 유익한 것인지는 검증
>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나, 전 후자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토론문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차돌 학생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토론 역량이 커진다면, "어쩌면 토론프로그램이
매우 재미나는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토론 역량을 키우는 것도
텔레비전의 공익적 의무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론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더 재미있어야
하고, 여기에서의 재미를 굳이 나쁜 쪽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토론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재미' 혹은
>'시청률'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는 '재미'에서 자유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청률'에서 자유로울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차돌 학생과 저의 의견 차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설마, 차돌 학생의
의견이 토론 프로그램을 딱딱하고 엄숙하게 만들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만, '재미'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 차돌 학생덕분에 아주 "재미" 있는 토론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군요...^---^


[차돌 : *^^*]
'깊이있는 재미'에 관한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의 이야기 또한 깊이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토론 프로그램이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같은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사람들로부터 최근과 같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세가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위의 프로그램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만 한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루었고, 둘째, 그러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며, 세째는 그러한 프로그램들로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세가지 요인들 중에 어떤 것이 선행 조건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박통 시절에 '경제성장과 노동환경'에관해 토론이 진행되었다면, 우선 그러한 주제의 토론이 성사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뻔한 결론의 토론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재미도 없었을 것이구요. 그 시절에는 사회적으로 '성장 우선'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강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문제에 관해 오늘날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충분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는 토론프로그램 자체의 질적 차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좋은 프로그램이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가, 아니면 성숙한 시민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가.

물론 상호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토론 프로그램은 올바른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능해야 하며 주제 선택이나 진행에 있어서 충분히 자유롭고 중립적일 수 있다면 좋은 주제를 선택해서 토론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행 조건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그 토론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혹은 시청하는 사람들의 풍부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역량은 토론프로그램에 의해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거대한 어떤 것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토론프로그램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법이나 혹은 어떤 다른 방법으로든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얕은 재미'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며 목적전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 말씀에 꼬박꼬박 말대답한다고 저 미워하시면 안되는데... ㅡㅡㅋ


[이남표 : Re) *^^*]=======================
차돌 학생,
제 답변에 "꼬박꼬박 말대답"을 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차돌 학생처럼 '말대답' 하는 학생을 젤 좋아합니다.

선생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가다듬고 제시한다는 것, 이거야말로
진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금까지 논의에서 우리가 동의한 것은
"깊이 있는 재미"라는 점에 관해서라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재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만들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서로의
견해가 다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은 프로그램이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가, 아니면 성숙한
>시민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가.
>물론 상호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토론 프로그램은 올바른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능해야 하며 주제 선택이나 진행에 >있어서 충분히 자유롭고 중립적일 수 있다면 좋은 주제를 선택
>해서 토론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행 조건은 아까
>도 말씀 드렸지만 그 토론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혹은 시청하
>는 사람들의 풍부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역량은 토론프로그램에 의해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거대한 어떤 것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강조한 점은 "훨씬 거대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차돌 학생의 말처럼,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기르는데
토론 프로그램만으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다만 토론 프로그램으로 논의를 한정시켰을 뿐이지요.
따라서 어떻게 하면 토론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포맷을
수정하고 발전시켜서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인가에만 주목했습니다. 제가 쓴 원래의 글은
그런 목적으로 한정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토론프로그램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법이나 혹은 어떤
>다른 방법으로든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연연
>하는 것은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얕은 재미'를 추구
>하게 되는 것이며 목적전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좀 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도 고민입니다...-_-

토론 프로그램에서 승부를 가리자는 제안이
자칫 흥미 위주의 오락 프로그램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승부를 가리거나 토론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를 굳이
미리부터 포기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은 드네요...^^

즉, 내용도 충실하고 재미도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는
얘깁니다. KBS의 일요 스페셜이나 환경 문제를 다루는
몇몇 다큐멘터리는 가끔 '두 토끼'를 잡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요?

*** '말대답'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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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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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과장은 멋진 사람이다.

샤프한 외모와 상냥한 표정,
나긋나긋하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는 말솜씨와 차분한 분석력,
활달하지만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대인관계.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자기 일에대한 자신감과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

내가 저사람보다 나은점이 있을까.

아마 내가 트롯트는 저사람보다 더 잘 부를거야. ㅡ0ㅡ;

멋진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본지 오래다.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그 언젠가부터 난 계속 제자리.
아니 어쩌면 뒤로 가고있는지도 모른다.

ㅋ.. 바보같이 누군가를 부러워하고있다니...

노력하면 그 모습만으로 나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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